백범 김구(白凡 金九,1876년 8월 29일(음력 7월 11일) ~ 1949년6월26일)

 한국의 정치가·독립운동가. 상하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신민회, 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해주 시골 출신의 평범한 어린 시절 - 유년기

 백범 김구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글공부를 하다가 양반들이 친척들을 차별하는 모습을 본 창암이는 양반이 되고자 했지만 돈을 주고 양반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되고,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기로 결심했어요.

쓰러져 가는 나라를 위하여 - 구국 운동기

 백범 김구 선생은 어른이 된 이후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으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쓰러져 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치하포에서 명성황후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스치다를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면서 다시 감옥에 갇힌 김구 선생은 ‘백범’이란 호와 ‘구’라는 이름을 지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백범 김구는 1904년 최준례와 결혼하여 딸 셋과 아들 둘이 있었는데, 나라를 위해 힘쓰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아들들에게 글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백범일지" 입니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직접 쓴 백범일지 상권은 아들들에게 남기는 유언으로 쓰여졌다면 1942년 중경에서 다시 쓰여진 백범일지 하권은 우리 민족에게 남기는 글이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문지기 - 독립운동기

 백범 김구 선생은 1919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셨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 밀정들을 처단하기도 하였고,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돕기도 하였다. 중경으로 임시정부가 옮겨졌을 때에는 가장 높은 자리인 주석에 오르셔서 독립의 그날까지 임시정부를 지키셨다.

조국으로 돌아온 백범 김구 선생 - 통일 운동기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정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백범 김구 선생 역시 11월 23일 개인 자격으로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조국은 38도선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김구 선생은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통일된 나라를 세우기 위해 평양에서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통일되지 못하였고,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민족국가

네 소원(所願) 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 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 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정치이념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절대로 각 개인이 제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 하면 이것은 나라가 생기기 전이나, 저 레닌의 말 모양으로 나라가 소멸된 뒤에나 있는 일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인류에게는 이러한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왜 그런고 하면, 국가란 일종의 규범의 속박이기 때문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법이다. 개인의 생활이 국법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일계급에서 온다. 일개인에서 오는 것을 전제 또는 독재라 하고, 일 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독재라 하고 통칭 파쇼라고 한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富)는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武力)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백범 김구, 1부 나의 길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백범 김구, 2부 나의 소원


참고사이트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

http://www.kimkoo.or.kr/main/

백범김구기념관

http://www.kimkoomuseum.org/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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