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너네들은 누구니??? 어디서 왔니??

최근 새누리에서 이름 바꾼 정당이 자유한국당이다 이들은 과거 한나라당에서 박근혜가 대선에 출마 하면서 새누리라는당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당명을 바꾸어 가면 연명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뿌리까지 파헤쳐 보자.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왠지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자유당, 자유한국당 다음에 당명은 뭐가 될까???

당의 붕괴 과정을 보면 도져히 반성 의식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일본의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부정선거, 독재, 야합, 차떼기, 국정농단

이들은 늘 간판만 바꾸도 다시 부활 할 수 있었다.

이는 모두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와 1000만 촛불이 불타오르고 있다.

 자유당

1951년 12월에 이승만 대통령 주도로 자신의 집권연장을 위해 창당된 보수정당이다. 정부수립 초기 정당무용론을 주장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 내에서 자신의 지지기반이 약화되자 정국타개를 위해 자유당 창당을 도모했다. 창당과업은 당시 주중국 대사로 있던 이범석에게 맡겨졌으며, 창당에는 원내의 공화민정회, 원외의 국민회, 대한청년단,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 대한부인회, 농민조합총연맹 등 핵심적 사회단체가 참여했다. 이승만을 당수로, 이범석을 부당수로 하여 직선제 개헌안 지지를 표명한 원외 자유당 세력은 이범석의 조선민족청년단과 5개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개헌안을 통과시킨 후 이승만은 함태영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하고 이범석 계를 축출한 후 이기붕을 2인자로 지도체계를 개편했다. 이후 자유당은 사사오입개헌파동 등을 일으키며 이승만의 집권연장을 기도하다가 4.19혁명으로 붕괴되었다.


 공화당

민주공화당은 1963년 2월 26일 창당되었다. 제5대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를 지명하여 윤보선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당선시켰으며, 1963년 11월 26일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당이 된 뒤 집권여당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이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계속 승리하여 1979년 10·26사태로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1980년 10월 27일 자동해산될 때까지 17년간 집권당으로 존속했다.

유신체제 붕괴 이후 공화당은 당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5·17조치로 집권한 신군부세력에 의해 해산된 후 잔류세력은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결성하고 대통령 선거에 김종필을 후보로 내세워 재기를 꾀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4당으로 재기했다가 1990년 2월 9일 민주자유당으로 합류했다. 


 민정당 

1981년 창당대회 및 대통령후보 지명대회를 열어 당 총재 및 대통령후보로 선출·추대하여 후보자인 전두환이 대통력으로 당선되어 제5공화국의 집권당이 되었다. 제1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집권여당이 되었으며, 1985년에도 안정 의석을 차지했다.

1987년 6월 대통령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와 노태우의 '6·29선언' 이후 1988년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원내 제1당으로 집권했지만 여소야대라는 불안정한 정국이 형성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민주공화당, 통일민주당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여당을 창당하였다.

창당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민족자주성 확립, 통일민주복지국가의 건설, 남북대화의 적극추진,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1인 장기집권 배격, 자조조직의 육성과 지방자치제 실시, 정의사회 구현 등이다.


 민자당

1988년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과 제3야당인 신민주공화당은 여소야대 정국이 민주정의당과 평화민주당의 주도로 전개되면서 점차 입지가 축소되었다.

민주정의당은 여소야대 구조를 변화시키고 보수연합구도를 구축하려는 목적에서 3당 통합을 추진하여 민자당을 창당해 국회의원 2/3를 넘어선 거대여당을 이루었다. 구성이 지분율에 의해 배분되어 창당 당시 총재 밑에 3명의 대표위원이, 1명의 사무총장 밑에 4명의 사무부총장이 있었다. 

창당 이후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폈으며, 의원내각제 파동 등 계파간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14대 총선에서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신한국당

신한국당의 전신인 민자당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비리가 폭로되는 등 5·6공화국의 비리의혹과 김영삼 정부 출범 후의 대형사고 등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해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이에 대외적인 이미지 쇄신과 김영삼 대통령의 당지도력 강화를 목적으로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신한국당은 출범 2개월 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39석을 확보함으로써 제1당이 되었다. 이후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고문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를 지원한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 이회창 후보와 갈등이 일어났다. 그 결과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탈당했고, 신한국당은 소수야당인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신당인 한나라당으로 재출발했다. 


 한나라당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를 대통령 후보 겸 명예총재로 출범했다. 한나라당은 합당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당헌과 정강정책에서 김영삼 대통령과의 차별성 확보에 나서는 한편, 대통령제 고수와 '3김정치' 청산을 강령에 못박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장기간 집권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야당이 되었으나 제16대 총선에서 승리하여 여소야대를 형성하고 지방자치제 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패배 후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계속 마찰을 빚어 2004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새누리당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보수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며, 한나라당을 전신으로 하는 보수적 성향의 한국 정당. 새누리당은 2012년 1월 26일 전신인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당명 변경을 결의하고, 의원총회·상임전국위원회·전국위원회를 거쳐 당명이 확정됨에 따라 출범한 정당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21일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의 합당을 통해 만들어진 정당이었다. 2016년 하반기까지 보수계열을 대표하는 집권 여당의 지위를 유지해 왔으나,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당 운영에 실망한 많은 소속 의원이 탈당하는 사태를 맞았고, 2017년 2월 8일 당 쇄신의 차원에서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고, 13일 새 당명과 로고, 당헌과 당규의 개정안이 추인되었다.

이번만큼은 그들의 잘못을 촛불이 아닌 자유당 로고처럼 횃불로 모두 태워 부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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